엘리스 스쿨 튜터 첫 체험수업 후기

4 분 소요

2023.02.22

취준 중에 사실 알바를 하기도 그렇고 해서 그냥 모은 돈 야금 야금 써가며 지내고 있었는데, 엘리스 스쿨이라는 코딩 교육 플랫폼의 튜터 모집 공고글을 보고 지원하게 되었다.

사실 원래는 취준중에 돈을 버는 행위자체를 안하려고 했었는데, 알바 하나만 해도 최소 이동시간 + 노동시간까지 하면 근무를 짧게 한다고 쳐도 최소 4-5시간의 시간이 들어가는건 물론 체력도 낭비되서 하루를 아예 알바만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사실상 지금 시간을 알바에 쓰는 건 오히려 시급을 받아도 손해라고 생각해서였다.

근데 엘리스 스쿨 튜터는 우선 비대면 수업으로 인해서 수업에 들어가는 이동거리가 0일 뿐만아니라, 육체적 노동이 아니기 때문에 체력적인 낭비도 적고, 게다가 시급도 거의 2만원 정도라서 시간대비 효율이 취준하면서 할 정도의 가성비가 나온다고 생각해서 신청하게 되었다.

튜터 채용절차는 크게 3가지로, 간단한 코딩테스트와 1회의 수업 시연, 그리고 간단한 온보딩 절차를 거쳐 진행되었다.

하지만 튜터가 된지 조금 되었음에도 수업을 잡기가 쉽지 않았었는데, 우선 매칭이 선착순이라 특정시간에 공고에 댓글을 먼저 다는 순으로 신청이 되는데 이게 너무 빡세다는 것 이었고…(개인적으로는 플랫폼 입장에서 튜터 매칭 방식에 조금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번째는 여기에다 더해서 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스크래치 강의는 별로 진행하고 싶지 않았다는것이었다.

사실 체험 수업 5회를 진행해야 정규 수업 진행을 맡을 수 있기 때문에, 든든한 캐시 카우를 위해서는 아무거나 5회 진행하는게 속 편했지만…

뭐 내가 돈이 급한것도 아니고, 사실 롯데마트 문화센터에서 이미 한번 저학년 상대로 스크래치를 진행해본 경험이 있는데 그때 기억이 너무너무 안좋았어서 별로 하고싶지가 않았다. 스크래치를 하는 대부분의 초등학교 저학년들은 스스로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부모님이 시켜서 오는 경향이 커서, 다들 집중하려는 의지도 없고… 이해력도 너무 떨어지고… 나는 아이들을 정말 정말 많이 좋아하는 편인데도 쉽지 않았었다.

반면에 그 후에 과학고에 들어가는 예비 고1 상대로 과외를 진행했었는데, 물론 걔가 똑똑하기도 했지만 우선 코딩에 관심이 많아서 수업때 내 이야기에 항상 집중해주는 것은 물론 내가 말하는 내용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교사로써도 즐거웠던 기억이 있어서, 어느정도 대화가 되고 코딩에 관심이 있는 애들과 함께 수업을 진행하는게 아이로써도, 나로써도 의미 없는 시간이 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돈도 돈이지만 즐거운 시간이 됐으면 해서 되도록이면 두가지 기준의 수업만 진행하려고 했다.

  1. 초등학교 고학년일 것
  2. 스크래치가 아닌 텍스트 코딩 수업일 것

그래서 어제 겨우 겨우 첫 매칭을 잡아 수업을 진행했는데, 생각보다도 더 재밌는 시간이었다. 어제 수업한 학생은 코딩에 관심이 많아서 부모님께서 오프라인 학원을 보냈다가 그게 오히려 역효과가 나서 열의가 좀 떨어져서 주눅인 들은 사연을 가진 친구였는데, 그래서 그런가 게임 접은 뉴비를 다시 시작하게 만드려는 고인물 유저가 된 것마냥 다시 코딩을 좋아하게 할 생각에 수업 전부터 뭔가 기대가 됐었다.

수업을 진행하면서 초반에는 사실 나도 처음이고 아이도 처음이다보니 어색하고 나도 좀 긴장이 됐었는데, 코딩을 시작하고부터는 서로 집중하게 되면서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 우선 해당 학생이 정말 코딩을 좋아하고 재밌어하는게 보여서 너무 좋았는데, 뭔가 나도 반성하게 되는 부분이 있었다… 나도 한때는 코딩하는거 자체를 저렇게 좋아했었는데… 물론 지금도 재밌어하고 좋아하지만, 저렇게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의 눈빛을 보니 나도 괜시리 다시 저 열정을 되찾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정도 실력을 간단하게 알아보기 위해서 정말 기초적인 부분을 같이 해보고 다 알고 있고 할줄아는 내용인 것 같아서 넘어 간뒤, for문을 중점적으로 수업을 했다. 사실 for문이라는게 for문 하나까지는 쉽게 이해하지만 for 문이 중첩되기 시작하면 아이들 입장에서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다.

어제 가르쳤던 문제의 정답이 대략 아래와 같은 것이었는데,

1
2
3
4
5
6
for i in range(4):
	for i in range(2):
		rabbit.move()
	rabbit.turn_left()
	rabbit.pick_carrot()
	

정답을 보면 쉬워보이지만, 코딩을 접한지 얼마 안된 입장에서 위 코드를 빈 공간에서 처음부터 다 작성하려면 쉽지 않다.

그래서 아이도 조금 어려워하는 모습이 보여서 힌트를 주려고 했는데, “선생님 제가 혹시 우선 쉬운방법으로 먼저해봐도 될까요?” 라고 하길래, 그러라고 했다.

그러더니 이런 코드를 작성했다.

1
2
3
4
5
for i in range(4):
	rabbit.move()
	rabbit.move()
	rabbit.turn_left()
	rabbit.pick_carrot()

그러고는 코드를 돌려 정답인지 확인 한 뒤, 이제는 코드에서 rabbit.move()가 두번 반복되는 것이 직관적으로 보이니까 여기에 for문을 적용해서 정답 코드를 만들어냈다.

어떻게 보면 간단한 작업을 한것 처럼 보이지만 , 이건 정확히 프로그래머들이 하는 ‘우선 돌아가는 코드를 작성한뒤, 이를 바탕으로 코드에 있는 비효율을 제거하는’ 리팩토링과 동일한 과정을 해낸 것이다!

그래서 프로그래머들도 실제 이런식으로 진행한다고 이야기 하면서 칭찬을 아껴주지 않았다. 사실 진짜 내심 놀라기도 했고…

그래서 이 과정이 조금 재밌었어서 사실 체험수업은 원래 50분이지만 뭔가 내심 끝내기가 아쉬운 마음에 백퍼센트 이해가 안됐거나 한번만 더 해봤으면 하는거 있으면 말해달라고 했는데, 기특하게도 중첩 for문 한번만 더 해보고 싶다고 해주어서, 기꺼이 기쁜마음으로 10분 더 추가 수업을 통해 예제를 하나 더 함께 완성해보고 수업을 마무리 했다.

체험수업인게 아쉬울 정도로 아이와 Fit이 맞는다고 생각했던 수업이었는데, 정기 수업을 내가 진행하지 못한다는게 아쉬운 수업이었다… 내심 아이나 부모님이 정기수업도 체험수업 진행했던 선생님으로 꼭 해달라고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들었다. 내 진심이 닿았으면 좋으련만…

어쨌든 나름 지루한 취준 기간에 조금 새로운 자극이 되어서, 오늘 부터는 좀 더 적극적으로 매칭에 나설 생각이다!!!

사실 한 몇달전만 해도 나라는 사람은 교사라는 직업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왜냐면 돈도 조금 받고, 힘든 직업아니야? 하는 생각때문이었다. 내가 직업을 고르는 기준은 너무 부끄럽고 편협하게 겨우 돈을 얼마주고 일이 어떤지를 보는것이었으니까…

그런데 얼마전 여자친구가 유치원에 한달간 교생실습을 하고왔는데, 아이들도 여자친구를 너무나 사랑해주고 여자친구도 아이를 사랑해주는 과정에서 얻는 그 기쁨과 행복을 바라보며,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아, 세상에는 돈따위로는 절대 환산할 수도 없는 저 너머에 있는 가치를 얻을 수 있는 그런 직업들이 있구나.

나 같은 컴돌이는 평생 알지도 경험하지도 못할 그 너머의 가치를 경험하고 있는 여자친구를 보며, 모든 직업을 돈으로 평가했던 내 자신을 스스로 반성하고 부끄러워하는 계기가 되었다.

어쨌든 나도 이제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는 입장이 되었으니, 이것이 단순히 돈을 벌기위한 기회가 아니라 그들이 경험하는 그 너머의 가치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는 기회로 만들고자 노력할 것을 다짐하며, 오늘 일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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